계절학기 첫 번째 시간인 성과 인간관계에서는 토론수업을 종종 하는 편인데, 결론을 말하자면 그다지 재미있지도 않고 나는 서기의 역할을 맡고 있으므로 그 핑계를 대고 대체로 그냥 듣기만 하는 편이다. 가끔 발언권이 돌아오면 말을 하는 정도. 원래 나서서 말하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는 타입이 아닌데다가, 과가 이 모양이다보니 말하는 훈련도 되지 않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입이 무거워지기 때문일거다.
이 과목의 조원은 11명 정도로 이루어져 있다. 서기를 하다보니 당연한 이야기로 누가 많이 이야기하고, 어떤 사람의 가치관이 어떤가에 대해서 보다 잘 알게 된다. 메모를 한 이후에 토의록을 정리해서 올려야 하기 때문에 몇 번 더 읽어야 하기 때문이다. 보다 보면 발언의 양대산맥을 이루는 사람이 둘 있다. 한 사람이 조장이고, 다른 한 사람이 있다. 개인적으로 견해가 나와 백만광년인 사람이 전자이고, 후자도 아슷하게 백만광년이다. (이 아슷하게 백만광년인게 더 무서울 때도 있지만...)
오늘은 문제의 조장이 나오지 않았는데, 앞서 말한 후자의 사람이 너무나 말을 많이 해 버리는 바람에 토의가 진전이 안 되었다. 시간이 약 30분 정도 주어지고 11명의 조원이라면 대강 한 사람당 길어봐야 3분이 돌아간다는 것은 상식이건만 그 사람이 거의 반 이상 말을 한 것 같다. 그리고 넓은 의미에서 주제에 어느 정도 들어가는 것은 알겠는데, 좁은 의미에서는 논지에 완전히 부합한다고 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. 사실 오늘은 좀 심한 정도여서 사람들의 표정이 모두 안 좋은 상태였는데, 조장이라는 권한을 가진 사람조차 없으니 결국 그 사람을 막을 사람도 없었기 때문에 논의는 표류하고 끝났다. -_-;
사실 상대와 즐거운 대화를 이끌어 나간다는 것은 생각보다 힘든 것 같다. 상대를 존중하는 것부터 시작해서, 화제를 선별하는 것까지. 상대적으로 아주 즐거운 대화를 할 수 있는 쪽이 취미를 공유한 사람이라는 데에는 부인할 여지가 없지만, 이 취미생활을 공유했던 사람이 모두 다 다른 취미생활로 넘어가서 공유할 것이 없어졌을 때에 다시 만났을 때에는 문제가 된다. 진정으로 어려운 대화의 시점이 아마도 이 때일 것이다.
인터넷이나 블로깅으로 서로 만난다고 해도 거의 오프라인의 사람이라고 생각할 만큼 자주 만나거나, 실명을 트고 지내는 경우가 많아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사람을 별로 구분하는 편은 아니지만, 분명히 내게 이 사람이 취미생활로 만나는 사람인가, 아니면 친구가 되는가는 조금 다른 문제인 것 같다. 보통 친구라는 개념으로 들어서게 되면 취미생활이 나중에 갈린다고 해도 다시 만나서 별다른 문제가 없다. 나는 그 사람의 일상을 알고 그 사람 역시도 나의 일상을 알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다른 의미에서의 접점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.
문제는 취미생활로서 만났던 사람의 경우, 후에 공통 관심사를 잃고 나서도 만나게 되는 경우이다. 이 때는 화제의 선택이 정말로 중요해진다.
사람들 중에 상대에 상관 없이 자신의 현재의 베스트 관심사를 화제로 제시하려는 사람이 있다. 이런 사람과는 대화하기가 참 어렵다. 나와 그 관심사가 일치하면 문제가 없는데, 그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.
사실 자신의 이야기를 하더라도 자신의 이야기를 어느 정도 하고 나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자세가 기본적으로 있는 사람이면 설령 화제가 많이 나와 어긋난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힘들지는 않다. (이런 사람 중에 사실 자신의 화제를 강요하는 경우가 별로 없는 것도 사실이다;) 왜냐하면 나 역시도 그 사람에게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고, 나도 그 사람의 다른 관심사를 들으면서 없던 흥미도 생겨날 수 있고, 그 쪽도 마찬가지의 반응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.
가장 힘든 것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을 끊임 없이 하고 있는 상대방이다. 그리고 상대가 나보다 나이가 많은 경우에는 더욱 힘들어진다. 상대적으로 나이에서 오는 관계 때문에 중간에 그 이야기를 끊기가 애매하기 때문이고, 대체적으로 나 역시도 상대가 좋아하는 화제를 얘기하도록 두는 편이다 보니까 거기에 끼어 들어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게 되기가 참 힘들기 때문이다. 그러나 듣고만 있다보면 즐겁지 않고 나도 지치고 결국에 가서는 그 사람을 만나기가 괴로워진다.
내 주변 사람 중에 이런 사람은 거의 없다 라고 봐도 좋지만, 사실 없는 것은 또 아니라서... 문득 오늘 토론수업을 듣고 보니 생각이 났다. 가끔은 이런 경우에 나도 이렇게 상대에게 화제를 강제하는 것이 아닌가 되돌아보게 된다. 나는 얼마만큼 상대와 즐거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인가, 라는 건 수시로 되돌아 볼만한 문제인 듯하다.
결국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것이 일방의 문제가 아닌 쌍방의 문제라고 한다면, 역시 이런 사람을 아직 능숙하게 다루지 못한다는 것도, 어느 정도는 내 쪽의 문제일 수도 있으니까.